1. 서론 : 전쟁터보다 무서웠던 ‘굶주림’
중세 시대의 전쟁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은 검과 창, 성벽과 기사, 전투의 현장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전쟁의 진짜 적은 칼끝이 아니라 ‘배고픔’이었다. 병사들이 칼을 들기도 전에 무너졌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그들은 늘 배고팠고, 자주 굶주렸다.
전장을 누빈 수많은 병사들이 실제로는 적과 싸우기도 전에 굶주림과 탈진, 병으로 죽어갔으며,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식량 문제는 병력 유지의 최대 장애물로 떠올랐다. 당시의 군수 시스템은 매우 원시적이었고, 날씨와 지형, 정치적 사정까지 겹치면 식량 공급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글에서는 중세 군대가 왜 항상 굶주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해 본다.

2. 본론 : 중세 군대가 굶주린 5가지 근본적 이유
(1) 군수 시스템의 부재
중세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중앙 집중적인 군수 체계가 없었다. 오늘날처럼 정부가 병사들의 식량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수송하는 군수부대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스스로 식량을 해결해야 했고, 영주나 왕은 전쟁을 시작하면서도 식량 조달 계획 없이 출정하는 일이 많았다.
결국 대부분의 군대는 행군 중 마을을 약탈하거나 자급자족에 의존해야 했으며, 주변에 마을이 없거나 이미 황폐화된 지역에 도착하면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준비 없는 군대가 멀리까지 진군하면 ‘굶어 죽는 군사 작전’이 되기 쉬웠다.
(2) 보급로의 불안정과 교통의 미비
중세에는 도로망이 매우 열악했다. 대부분 비포장도로였고, 비가 오면 진창이 되었으며, 겨울에는 눈과 얼음으로 인해 통행이 거의 불가능했다. 마차나 짐꾼을 이용한 식량 수송은 느리고, 자주 약탈당했다. 또 산악 지형이나 숲이 많은 지역에서는 길을 잃는 일도 많았다.
특히 원정군의 경우, 보급로가 길어질수록 식량 공급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전쟁 지속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수많은 중세 전쟁이 보급 실패로 조기에 종료되거나 참패로 이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3) 장기 전쟁과 계절의 영향
중세 시대는 농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사회였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며, 겨울에는 저장한 곡물로 버티는 구조였기 때문에, 특정 계절에 전쟁이 길어지면 식량은 빠르게 고갈되었다.
특히 겨울 전쟁은 병사들에게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재앙이었다. 동물도 죽고, 저장식량도 떨어지며, 고립된 부대는 눈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얼어 죽거나 탈영하는 일이 잦았다. 계절의 변화는 단순한 날씨가 아닌, 생존과 사기의 결정 변수였다.
(4) 병력 규모에 비해 부족한 자원
중세 군대는 전쟁이 발발하면 단기적으로 많은 병력을 징집했다. 평소에는 작지만, 전쟁 시 갑자기 수천에서 수만 명이 모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식량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었다.
당시의 마을이나 도시들은 일상적인 생계유지 정도의 자급자족 경제 구조였기 때문에, 갑작스레 몰려든 군대에게 제공할 수 있는 식량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 결과 한 도시가 하루 만에 식량을 고갈당하고, 인근 지역까지 기근이 퍼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민중의 반감을 불러오기도 했고, 반란이나 항거의 원인이 되었다.
(5) 전쟁 자체가 식량을 파괴했다
중세 전쟁은 전략적 이유로도 농경지를 파괴했다. 적이 사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불태우기(Scorched Earth) 전술이 흔히 사용되었고, 이는 아군에게도 식량 부족을 초래했다.
또한 성을 포위하거나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주변의 농작물을 먼저 거둬들이거나 불태우고, 자체적으로 고립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 방식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멸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내부 병사들부터 굶어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3. 결론 : 굶주림은 중세 전쟁의 ‘보이지 않는 적’이었다
칼과 화살보다 무서운 것이 굶주림이었다. 중세 군대는 단순히 전투로 패배한 것이 아니라, 보급 실패와 식량 부족으로 내부에서 먼저 무너졌다. 병사들은 싸우기 전에 먼저 굶주렸고, 사기는 추락했으며, 결국 탈영과 반란이 전투보다 먼저 일어났다.
중세 전쟁의 진짜 본질은 **군사력의 충돌이 아닌 ‘생존 자원의 싸움’**이었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군대는 필패했고, 이는 수많은 역사적 전투에서 반복된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중세사를 이해하려면 전술과 무기 이전에 식량과 군수의 역사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전쟁의 승패는 배고픔에서 시작되었고, 굶주림 앞에서 왕도 병사도 모두 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