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중세 유럽 사회에서 전쟁은 잦은 정치 갈등과 외침(外侵), 영토 분쟁의 결과로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전쟁은 단순한 군사 활동이 아닌, 엄청난 재정 지출을 수반하는 국가적 이벤트였다. 수천 명의 병력을 동원하고, 무기와 식량을 준비하며, 말과 갑옷, 배, 성벽 등의 유지와 건설까지 포함되면, 한 번의 전쟁은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안겼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중앙 정부가 세금을 통해 체계적으로 국방비를 운영하던 시스템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막대한 전쟁 비용은 누가 부담했을까?
실제로 중세의 전쟁 비용은 왕, 영주, 교회, 도시 상인, 기사단, 심지어는 농민까지 다양한 계층이 부분적으로 부담했으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분담 구조가 달라졌다. 이 글에서는 중세의 전쟁 자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구체적이고 단계적으로 살펴본다.

1. 왕의 재정과 전쟁 자금 조달 방식
(1) 초기에는 왕의 사유 재산에 의존
중세 초기에는 국가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고, 왕 또한 사적인 영지를 기반으로 수입을 얻었다. 따라서 전쟁 비용은 왕의 개인 재산, 특히 왕실 토지에서 거둔 수확물, 세금, 광산 수익 등을 통해 조달되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대규모 전쟁을 감당하기에 부족했으며, 왕이 직접 전쟁 비용 전부를 부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2) 영주와 귀족에게 ‘봉건적 의무’로 부담시킴
왕은 자신의 봉신들에게 전쟁에 필요한 병력과 자금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봉건 계약’에 따라 당연한 의무로 간주되었다. 귀족들은 자신이 지배하는 농노로부터 곡물, 자원, 병력을 징발하거나, 자신이 직접 무장하여 전쟁에 참가했다.
이러한 구조는 왕이 전쟁 비용을 간접적으로 귀족들에게 전가하는 효과를 낳았다.
(3) 전쟁세(War Tax) 도입과 의회 소집
중세 후기로 가면서 전쟁이 장기화되고 규모가 커지면서, 왕은 더 이상 사유 재산과 귀족의 의무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왕은 ‘전쟁세’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귀족 및 성직자 대표들과 의회를 소집하여 조세 징수를 정당화했다.
예: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는 백년전쟁 수행을 위해 반복적으로 의회를 소집하고 세금 승인을 요청했다.
2. 귀족과 영주의 역할 및 비용 부담 방식
(1) 군대 직접 조직과 무장 비용 자체 부담
귀족은 자신의 기사단, 농노 출신 보병, 사병 등을 직접 무장시키고 훈련시켜 전쟁에 참여시켰다. 말, 갑옷, 무기 등은 귀족이 사비로 마련해야 했으며, 전쟁에 나간 기간 동안 자신의 영지 경영을 중단해야 했다.
따라서 귀족에게도 전쟁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전쟁은 전리품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2) 연합 작전 시 공동 부담 구조
여러 귀족들이 연합하여 군대를 구성하는 경우, 각 귀족은 일정 병력과 물자를 분담하였다. 이런 협력은 일시적 연맹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전쟁의 목적에 따라 부담 비율이 조정되었다.
예: 십자군 전쟁 당시 유럽 여러 귀족들이 병력과 자금을 나누어 부담하였다.
(3) 전쟁 채무와 상업 자본과의 연계
일부 귀족들은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시 상인이나 금융업자에게 대출을 받았다. 이로 인해 중세 후반에는 귀족이 상업 자본에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도시의 금융 세력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3. 교회와 종교 세력의 자금 지원
(1) 십자군 전쟁 시 교회의 적극적 자금 지원
가장 대표적인 예는 십자군 전쟁이다. 이슬람에 맞선 성지 탈환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교회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였다.
교황청은 전쟁을 ‘신성한 의무’로 규정하며, 성직자 세금, 면벌부 판매, 기부금 등을 통해 전쟁 자금을 마련했다.
(2) 종교적 선동을 통한 개인 기부 유도
교회는 성전을 위한 기부를 장려하고, 이를 통해 민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았다. 중세 말기에는 면죄부 수익금이 군사 자금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이는 나중에 종교개혁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3) 교회 소유 영지에서 병력 및 물자 제공
교회 역시 광범위한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영지에서 병력과 곡물, 말, 장비 등을 징발하여 전쟁에 지원했다.
4. 도시, 상인, 금융가의 간접적 자금 지원
(1) 도시와 길드의 기부 및 조세 납부
중세 도시들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독립적인 자치권을 얻는 대가로 전쟁 자금을 지원했다. 도시 내부의 상인, 수공업자, 길드 등은 세금과 특별 기부금을 통해 전쟁 자금을 보조했다.
이런 과정에서 도시는 왕권과의 연결 고리를 강화하고, 정치적 자율성을 얻기도 했다.
(2) 금융가문들의 대출 역할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독일의 푸거 가문 등은 중세 말기부터 왕이나 귀족에게 대규모 전쟁 자금을 대출해 주는 주요 금융 파트너였다. 이들은 대출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국가로부터 특권을 얻었다.
(3) 세금 대행업자(Tax Farmer)의 등장
왕이 직접 세금을 징수하기 어려울 경우, 도시 상인들에게 세금 징수권을 판매했다. 이들은 정해진 세금을 왕에게 미리 납부하고, 일반 민중에게서 실제 세금을 걷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렸다. 이런 간접 시스템도 전쟁 자금 조달 구조의 일환이었다.
5. 민중과 농민 계층의 간접 부담
(1) 물자 징발과 강제 노동
전쟁 시기, 왕이나 귀족은 농민에게 식량, 말, 장비, 병력 징발을 명령했다. 이는 사실상의 강제 세금이며, 민중의 생계를 위협했다.
또한 병참선을 유지하기 위해 농민들에게 성벽 공사, 도로 정비, 운반 작업 등의 노역을 강요하기도 했다.
(2) 전쟁세와 소작료 상승
중세 말로 갈수록 민중에게 직접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전쟁세’ 형태가 등장했다. 이는 농민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각종 반란의 원인이 되었다.
예: 14세기 잉글랜드의 ‘농민 반란(Peasants’ Revolt)’은 과도한 전쟁세와 강제 징병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다.
(3) 물가 상승과 경제적 고통
전쟁 비용 부담은 단지 세금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자금 부족으로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고, 물가가 상승하면서 민중은 간접적으로도 전쟁의 비용을 지불하게 되었다.
결론
중세 시대의 전쟁은 단순히 왕이나 귀족의 싸움이 아니었다. 전쟁은 사회 전체가 경제적 부담을 나누어 떠안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계층마다 다른 방식으로 비용을 분담했다.
왕은 자신의 재산과 권한으로 전쟁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귀족, 교회, 도시, 상인, 농민까지 동원하며 점점 복합적인 자금 구조를 형성했다. 이는 단순히 재정 문제를 넘어서, 국가 권력의 성장, 중앙집권화의 강화, 상업 자본의 부상, 민중 저항의 원인 등 중세 사회 변화의 핵심 요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