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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포로는 어떻게 처우받았는가

by 중세시대 2026. 1. 4.

1. 서론 : 감옥은 벌이 아닌 '기다림'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교도소는 일정한 인권이 보장되고, 형벌을 복역하며 교화의 기회를 주는 공간이다. 하지만 중세 시대의 감옥은 그런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죄수에 대한 처우는 법률, 종교, 계급, 심지어 감옥의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감옥은 죄를 씻는 공간이 아닌, ‘형이 결정되기 전까지’ 혹은 ‘형을 집행할 날까지’ 기다리는 장소였고, 대부분의 죄수는 오랜 시간 수감되지도 않았다.

중세의 형벌은 신속하고 잔혹한 경우가 많았으며, 감옥은 오히려 일시적인 대기소였다. 감옥 안의 위생은 처참했고, 수감자는 스스로 음식을 해결해야 했으며, 죄인의 계급에 따라 대우가 달라졌다. 이 글에서는 중세 유럽에서 죄수가 어떤 방식으로 수감되고, 어떤 환경에서 생활했으며,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중세 시대 포로는 어떻게 처우받았는가

2. 본론 : 중세의 죄수들이 처한 현실

(1) 감옥의 본질은 형벌이 아닌 '보관'

중세 유럽에서 감옥은 오늘날처럼 형벌을 집행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당시의 감옥은 대부분 판결 전까지 범인을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공간으로 쓰였고, 형벌은 밖에서 공개적으로 집행되었다. 감옥은 재판 대기, 벌금 미납자, 신분 증명 불가자 등을 임시로 구금하는 공간이었다.

장기간 수감은 드물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형벌은 신속하게 결정되었다. 교수형, 화형, 단두대 처형 등 잔혹한 형벌이 중심이었기에, 감옥은 일종의 ‘선고 대기실’에 가까웠다.

(2) 위생 상태와 생활 여건의 참혹함

중세 감옥의 환경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위생적이었다. 화장실이 없었고, 배설물은 감옥 안에 쌓였으며, 환기가 되지 않아 전염병이 쉽게 퍼졌다. 병에 걸리면 치료는커녕 방치되기 일쑤였고, 살아남는 것이 운이었다.

또한 국가가 수감자에게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수는 가족이나 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으면 굶어 죽는 일도 흔했다. 지하 감옥의 경우 햇빛조차 들지 않았으며, 습기와 곰팡이로 인해 생존 자체가 고통이었다.

(3) 죄수의 계급에 따른 차별적 대우

중세는 철저한 계급 사회였고, 죄수에 대한 대우도 계급에 따라 달랐다. 귀족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일반 감옥이 아닌 성 내의 별실이나 하우스 나레스트(거주지 구금) 형태로 처벌받았다. 반면 하층민이나 농노는 열악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고문이나 처형을 포함한 극단적인 처벌이 가해졌다.

상류층은 종종 벌금형이나 정치적 타협으로 형을 면하기도 했으며, 평민은 동일한 죄를 저질러도 훨씬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같은 감옥에 있어도 귀족은 침대와 음식이 제공된 반면, 하층민은 맨바닥에서 굶주림에 시달렸다.

(4) 고문과 자백의 강요

중세의 사법 체계에서 자백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자백을 얻기 위한 수단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극도로 비인도적이었다. 고문은 법적 절차의 일부로 받아들여졌고, 다양한 도구들이 고안되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엄지나 발가락을 조이는 나사 기구, 팔다리를 잡아당기는 고문대, 물고문 등이 있었다. 심지어 자백을 강요받는 동안 죄수는 수감된 상태에서 더 심한 고통을 겪었고, 고문 후유증으로 죽는 경우도 많았다. 죄가 증명되지 않아도 고문으로 인한 자백만으로 처벌받는 일이 허다했다.

(5) 종교적 죄수와 이단자에 대한 처우

중세 시대는 교회가 강력한 권한을 가졌던 시기였고, 종교적 죄수들에 대한 처우는 일반 범죄자보다 더 잔혹했다. 이단자, 마녀, 무신론자로 분류된 사람들은 종종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고문은 정당화되었다.

종교재판소는 감옥보다 더 악명 높은 ‘심문실’을 운영했고, 이곳에서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심문과 고문이 병행되었다. 특히 마녀로 의심받은 여성은 신체에 ‘악마의 표식’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신체 수색을 당했고, 대다수는 화형을 당하거나 돌에 묶여 물에 빠뜨려지는 시험을 거쳤다.

3. 결론  : 인권이 없던 시대의 죄수들

중세 시대의 죄수는 법 앞에 평등하지 않았다. 신분, 성별, 종교에 따라 처우가 달랐고, 그들의 삶은 말 그대로 ‘버텨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감옥은 단지 형벌을 기다리는 고통의 공간이었고, 살아서 나오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러한 현실은 중세의 사법 체계가 처벌 중심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교화나 인권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형사 제도와 비교하면, 중세 감옥과 죄수 처우는 단지 과거의 잔혹함을 넘어서 당시 사회 구조와 권력 체계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