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궁술이 지배한 시대의 전장을 가르다
중세 유럽의 전쟁에서 원거리 무기는 전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무기였다. 그중에서도 전통 활(bow)과 석궁(crossbow)은 병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무기이자, 각기 다른 전술과 전략을 만들어낸 무기였다. 활과 석궁은 모두 화살을 발사하는 원리지만, 구조와 사용법, 사거리, 관통력, 재장전 속도, 그리고 훈련 방식까지 완전히 달랐다.
특히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유럽 전장은 활과 석궁이 공존하며 전투의 핵심이 되었고, 심지어 교황이 석궁 사용을 금지하려 한 기록도 존재할 만큼 두 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상징적인 무기였다. 이 글에서는 중세 활과 석궁의 구조적 차이, 전장에서의 위력 비교, 병사와 전술에 미친 영향 등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어떤 무기가 더 강력했는지를 역사적 사례와 함께 살펴본다.

2. 본론 : 활과 석궁, 무엇이 더 강했는가?
(1) 구조와 조작성의 차이
활은 일반적으로 유연한 나무와 줄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병사는 활줄을 당겨 화살을 발사하며, 당기는 힘(활시위의 장력)이 강할수록 위력도 높아졌다. 반면 석궁은 목재와 금속으로 구성되어 기계적인 발사장치를 갖추고 있었고, 트리거 시스템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조준과 발사가 가능했다.
즉, 활은 전적으로 병사의 체력과 기술에 의존했으며, 석궁은 비교적 훈련이 부족한 병사도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계식 무기’였다. 이로 인해 활은 숙련된 궁수가 있어야 했지만, 석궁은 짧은 시간 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각광받았다.
(2) 관통력과 살상력의 차이
석궁이 등장한 이후 유럽 전장의 흐름은 눈에 띄게 변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압도적인 관통력 때문이었다. 석궁은 활보다 훨씬 강한 장력을 금속 부품을 통해 압축했고, 화살촉에는 강철이 사용되어 철갑을 뚫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특히 중세 기사들이 입은 금속 갑옷(플레이트 아머)을 관통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무기가 바로 석궁이었다. 반면 활은 갑옷이 없는 일반 병사나 말에 큰 위력을 발휘했지만, 중장갑 기사 앞에서는 위력이 제한적이었다.
13세기 이후, 장거리에서도 적의 갑옷을 꿰뚫는 석궁의 위력은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이는 기사 계급의 몰락을 앞당긴 간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3) 재장전 속도와 연사력의 차이
석궁의 가장 큰 약점은 재장전 속도의 느림이었다. 특히 장력이 강한 대형 석궁일수록 재장전에 시간이 오래 걸렸고, 병사는 도르래나 크랭크 장치를 이용해 활시위를 당겨야 했다. 이 과정은 약 15~30초까지 걸릴 수 있었으며, 전장에서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반면 활은 병사의 숙련도에 따라 매우 빠른 연사가 가능했다. 장궁(longbow)을 사용하는 영국 궁수들은 1분에 최대 10발 이상을 쏠 수 있었고, 실제 크레시 전투(1346)와 아쟁쿠르 전투(1415)에서 영국군은 프랑스 기사 군단을 활의 연사력으로 압도하며 승리했다.
즉, 단일 화력에서는 석궁이 우세, 연속 사격 능력에서는 활이 우세였다고 볼 수 있다.
(4) 사용자의 숙련도와 훈련 기간
활은 단기간에 익히기 어려운 무기였다. 특히 장궁은 강한 활시위를 당기기 위해 병사가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인 훈련을 받아야 했고, 실제로 영국은 궁수 양성을 위해 국가 차원의 장궁 훈련 제도를 운영하기도 했다.
반면 석궁은 구조적으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었으며, 귀족이나 시민 병사, 용병 모두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이런 특성 덕분에 석궁은 도시 방위나 용병 부대, 민병대에서도 널리 사용되었으며, 훈련 효율성이 높은 무기로 분류되었다.
(5) 전술적 활용과 군사적 상징성
중세 전장에서 활은 대규모 부대 운영에 유리했다. 넓은 지역에서 일제 사격을 가할 수 있었고, 후방에서도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병력 손실을 줄이면서도 지속적인 타격이 가능했다. 영국의 장궁 부대는 명실상부한 ‘장거리 화력 지원’의 핵심이었다.
반면 석궁은 성벽 방어, 보병의 정면충돌, 기병 저지 등 특정 상황에서 강력한 전력을 발휘했다. 특히 성을 공격하거나 방어할 때 석궁은 정확한 조준이 가능했기에 효과적이었다. 이로 인해 석궁은 도시 방위 병력이나 용병 조직에서 자주 쓰였으며, ‘현대적인 무기’로 평가받았다.
3. 결론 : 활과 석궁, 무엇이 더 강했는가?
결론적으로 활과 석궁은 위력의 방향이 다를 뿐,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석궁은 단일 화력과 관통력에서 우위에 있었고, 장갑 병사를 상대하는 데 탁월했다. 반면 활은 연사력, 작전 유연성, 훈련된 궁수에 의한 전술 활용에서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중세 전쟁사에서 두 무기는 서로 보완적인 존재였으며, 당시 군사 기술과 사회 구조의 발전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졌다. 활은 훈련된 군대의 상징, 석궁은 기술의 진보와 대중화된 무기로 평가된다. 중세 말기로 갈수록 화약 무기가 등장하면서 두 무기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활과 석궁은 여전히 중세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