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성은 단단했지만, 인간의 전략은 그보다 더 치밀했다.
중세 유럽에서 ‘전쟁’은 곧 ‘성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넓은 들판에서의 일기토가 아니라, 높은 성벽을 둘러싼 포위와 방어, 굶주림과 기만, 전략과 기술의 전면전이 중세 전쟁의 본질이었다.
왜냐하면 성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은 군사적 요충지이자,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이며, 한 지역 전체를 지배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따라서 하나의 성을 무너뜨리는 일은 단순한 돌과 철의 파괴가 아니라, 그 지역의 권력 구조와 민심, 지리적 이점을 모두 손에 넣는 일이었다.
하지만 중세 성곽은 간단히 무너지지 않았다. 수십 년을 들여 쌓은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면 공격을 넘어선 고도의 전략과 기술이 필요했다. 이 글에서는 중세 유럽에서 성을 포위하고 점령하기 위한 다양한 공성 전략과 기술, 그리고 실제 성이 무너지는 방식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 포위 공격은 전투가 아니라 '지배의 설계'였다
포위 공격(Siege warfare)은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니라, 심리전과 생존 전, 정보전이 모두 결합된 전쟁 기술이었다. 전면 돌격보다는 상을 차단하고 지치게 만든 뒤 항복하게 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포위 공격의 기본 순서:
- 성의 외부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한다.
- 병사들은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하며 포위망을 좁힌다.
- 성 안의 식량과 물이 고갈되기를 기다리며 압박한다.
- 필요시 공성 장비나 심리전을 동원해 항복을 유도한다.
이 전략은 장기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병참, 물자, 사기 유지, 지휘 체계가 매우 중요했다.
한편 성 안에서는 저장 식량, 우물, 민심, 배반자 여부가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 포위 전은 "단순한 공격"이 아닌 장기적 '심리적 해체' 과정이었다.

2. 성은 왜 그렇게 잘 안 무너졌을까?
중세의 성은 단지 벽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설계된 방어 건축물이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성의 구조도 더욱 정교해졌고, 이는 공격 측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중세 성의 주요 방어 구조:
- 이중 성벽(double curtain wall): 하나가 무너지더라도 두 번째 방어 가능
- 해자(Moat): 땅굴 파기나 공성탑 접근을 어렵게 함
- 살인구멍(Murder holes): 성문 위에서 적에게 화살이나 끓는 물 투하
- 측면 사격구(Machicolation): 성벽 아래를 공격할 수 있도록 돌출된 사격 공간
- 탑형 구조물: 높은 시야 확보와 교차 사격에 유리
이러한 구조 덕분에 성은 단순한 돌더미가 아닌, 군사적 방어 요새로 기능했다. 공격 측은 직접 돌격하는 방식 대신, 정밀하고 치밀한 공성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3. 땅굴과 갱도: 성을 아래에서 무너뜨리는 기술
정면 공격이 어려운 경우, 중세 군대는 성벽 아래로 갱도(지하 터널)를 파서 성을 무너뜨리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 기술은 ‘갱도전(Mining)’ 또는 ‘지뢰공사(Sapping)’라고 불렸다.
갱도전의 방식:
- 갱도는 성벽의 기초까지 파고 들어가, 지지대를 제거하거나 불을 붙여 붕괴시킨다.
- 때로는 화약을 넣고 폭발을 유도하기도 했다.
- 성 내부에서는 이를 감지하기 위해 땅울림을 감청하거나, 맞 갱도를 파서 저지했다.
갱도전은 완전한 전략 전투였다.
어디서 파고 들어올지를 예측하고, 언제 무너질지를 계산하며, 상대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 성은 위에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조용히 붕괴되기도 했다.
4. 공성무기의 진화 – 성을 향한 기술의 발사
성을 점령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공성무기(siege engines)의 사용이었다. 중세 후기로 갈수록 공성무기는 진화를 거듭했고,
성과의 기술 발전을 따라잡기 위해 더 강력한 파괴력과 정확도를 갖춘 무기들이 등장했다.
주요 공성무기:
- 투석기(Trebuchet): 거대한 돌덩이를 날려 성벽을 직접 파괴
- 공성망치(Battering ram): 성문을 두드려 깨뜨리는 무기
- 공성탑(Siege tower): 병력을 성벽 위로 투입하기 위한 높이 조절식 나무 탑
- 불화살/기름탄: 성 안에 화재를 일으켜 혼란 유발
- 화포(Cannon): 14세기 이후 등장, 성벽을 붕괴시키는 결정적 무기
특히 대형 투석기와 화포는 중세 후기에 등장한 대표적 ‘성과의 파괴자’였고,
이들의 등장은 곧 중세식 방어구조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했다.
5. 심리전과 협상 – 성을 무너뜨리는 비물리적 기술
전쟁은 무기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포위 공격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때때로 심리적 압박과 교란, 내부 배신자였다.
포위 공격에서 사용된 심리전 기술:
- 시체나 동물의 시체를 성 안으로 던져 전염병 유포
- 밤낮 없는 북소리와 함성으로 수면과 정신 공격
- 가짜 정보 유포: ‘구원군은 오지 않는다’는 허위 소문 퍼뜨리기
- 항복 조건 제시 후 거절 시 집단 학살 암시
실제로 많은 성이 무너지기 전, 내부의 사기 저하와 민중의 불안으로 인해
문을 열거나, 내부에서 배신자가 생겨 함락되는 경우가 많았다.
📌 물리적 무력보다 무서운 건, 심리를 무너뜨리는 말 한마디였다.
6. 성이 무너진 후, 그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포위 공격 끝에 성이 함락되면, 그 장면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서는 정치적, 사회적 전환의 순간이었다.
성은 지역 지배의 상징이자 행정 중심지였기 때문에, 그 붕괴는 한 시대의 끝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성이 무너진 후의 전형적 상황:
- 지휘관과 귀족은 처형 또는 포로화
- 민간인은 약탈·학살·노예화 대상이 되기도 함
- 새로운 지배자는 성의 구조를 보강하고 다시 권력을 장악
이후에도 해당 지역은 오랫동안 패배의 기억, 배신의 기억, 학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갔다.
그러므로 성이 무너지는 방식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권력이 교체되고 역사가 전환되는 방식이었다.
결론: 성은 강했지만, 인간의 전략은 더 강했다
중세 전쟁에서 성은 최후의 보루였고,
그 성을 무너뜨리는 일은 곧 지역을 장악하고 권력을 확립하는 군사·정치의 결정적 행위였다.
포위 공격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기술, 전략, 심리, 외교가 종합된 고차원적 전투 방식이었다.
돌로 쌓은 성벽이 얼마나 단단하든,
사람의 의지와 전략이 더 정밀하고 지독할 때, 결국 그 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이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질서와 시대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