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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 이후 중세 전쟁 양상이 바뀐 결정적 이유

by 중세시대 2026. 1. 3.

1. 서론 : 전염병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다

흑사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세 유럽의 사회, 경제, 군사 구조 전반을 뿌리째 흔든 거대한 재앙이었다. 14세기 중반 유럽 전역을 휩쓴 이 전염병은 전체 인구의 약 30%에서 60%를 앗아갔으며, 이로 인해 봉건제 질서와 인력 기반이 붕괴되었다. 특히 중세 전쟁 방식은 흑사병 이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전쟁은 단순히 병사들의 수 싸움이 아니라 경제력과 전략, 기술력에 의해 좌우되는 국면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의 중세 전쟁은 주로 농민으로 구성된 대규모 병력, 봉건 영주의 기사단, 그리고 신분 기반의 징집 시스템에 의존했다. 그러나 흑사병 이후에는 인구가 급감하면서 이전처럼 대규모 인력을 징집하거나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의 성격 자체를 바꾸었고, 이는 중세 말기 이후 근세 초기의 군사 혁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흑사병 이후 중세 전쟁 양상이 바뀐 결정적 이유

2. 본론 : 흑사병이 중세 전쟁에 끼친 5가지 핵심 변화

(1) 병력 자원의 감소로 인한 군제 재편

흑사병 이후 가장 즉각적이고 뚜렷한 변화는 병력 자원의 급감이었다. 특히 농민 계층이 대량으로 사망하면서, 왕과 영주는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인 농민 징집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각 국가는 병사를 직업 군인으로 고용하는 ‘용병제’를 확대하게 된다. 이는 곧 현대적 군대의 초기 형태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백년전쟁 기간 동안 전문 보병과 궁수, 기병을 고용하여 전투 효율을 높였고, 일정 급여를 지급하며 군대의 상비화(常備化)를 추진했다. 병사 수는 줄었지만, 전투 기술과 조직력은 오히려 강화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2) 기사 계급의 쇠퇴와 보병 중심 전술의 부상

전통적으로 중세 전쟁의 중심은 기마 기사였다.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병력을 징집하고, 무장을 갖춘 기병으로서 전쟁의 핵심 전력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흑사병 이후 인구가 줄고, 농노 경제가 흔들리면서 기사들이 유지해야 할 경제 기반도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기사 계급의 영향력은 약해졌고, 동시에 보병 중심의 전술이 각광받게 되었다. 특히 장궁(Longbow)과 같은 원거리 무기가 전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고전적인 기병 돌격은 점점 비효율적인 전술로 전락했다. 이는 중세 후기에 접어들며 전쟁 기술이 단순한 용맹이 아니라 전술과 기술로 전환되는 분기점이 되었다.

(3) 전쟁 비용의 증가와 국가 주도의 전쟁 체제

흑사병은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인건비가 상승하고, 물가가 불안정해지면서 전쟁 수행 비용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봉건 영주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되었고, 국가 차원의 중앙집권적 군사 시스템이 강화되었다.

예산이 증가하면서 세금 체계가 정비되고, 전쟁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국가 재정 정책이 발전하였다. 이는 곧 왕권 강화로 이어졌고, 중세 후기에 국왕이 직접 군을 지휘하고, 전쟁을 총괄하는 구조가 일반화되었다.

(4) 성곽 중심 전쟁에서 기동성과 전술 중심 전쟁으로

흑사병 이전의 전쟁은 주로 성곽을 중심으로 한 공성전이 많았다. 하지만 흑사병 이후 인구가 줄어들면서 장기적인 공성전을 유지할 수 있는 병력과 자원이 부족해졌다. 이에 따라 빠르고 치명적인 기동 전, 야전 전투가 늘어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크레시 전투(1346)나 아쟁쿠르 전투(1415) 등은 기동성과 전술적 준비가 전통적인 기사 중심 병력을 압도한 사례다. 전쟁은 점점 전략과 전술의 싸움으로 변화했고, 이는 군사 훈련과 정보 수집의 중요성 증가로도 이어졌다.

(5) 민중의 전쟁 참여 증가와 전쟁 인식의 변화

흑사병 이후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농민과 하층민의 협상력이 강화되었고, 이들은 점차 사회의 주체로 부상했다. 전쟁에서도 그들은 단순히 징집되는 대상이 아니라, 용병으로서 계약에 따라 참여하며 보상을 요구하는 존재가 되었다.

또한 반복된 재앙과 전쟁 속에서 민중은 전쟁을 더 이상 명예로운 ‘귀족의 전유물’이 아닌, 고통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세 말 민란과 정치 참여 욕구로 이어지며, 사회 구조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3. 결론 : 흑사병은 중세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을 혼란에 빠뜨렸지만, 동시에 그 혼란은 기존 체계의 한계를 드러내고 새로운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적인 봉건 군사 체제는 붕괴되었고, 중앙집권적이고 전문화된 군대가 등장했다.

또한 군사 기술과 전술의 진화는 중세적 사고방식에서 근세적 합리성으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했다. 다시 말해, 흑사병은 단순한 인구 감소가 아니라, 중세 전쟁의 본질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였다. 전쟁의 효율, 구조, 주체까지 모두 달라졌고, 이는 이후 유럽 역사의 방향성을 바꿨다.